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나후네 케이지 (문단 편집) == 개요 == [[일본]]의 [[게임 개발자]], 캐릭터 디자이너, 사업가. [[록맨 시리즈]]의 [[게임 프로듀서]]이자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한때는 [[오카모토 요시키]], [[미카미 신지]], [[카미야 히데키]]와 더불어 [[캡콤]]을 대표하는 게임 제작자 중 한명이였으며 퇴사 이후에는 '콤셉트'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후 콤셉트가 [[LEVEL-5]]에 인수합병되어, [[http://comcept.co.jp/|주식회사 LEVEL-5 콤셉트]]의 자회사가 된 2017년 기준으로 콤셉트의 대표이사 겸 LEVEL-5 콤셉트의 CCO (Chief Customer Officer)이다. [[록맨 시리즈]] 크레딧에서는 '''INAFKING'''이라는 별명을 사용한다.[* 비슷한 경우로 [[악마성 시리즈]]의 [[이가라시 코지]] 또한 IGA라는 별명을 크레딧에서 사용한다.] [[아이디어 팩토리]] 쪽에서 압도적인 신작을 개발한다며 갑자기 등장한 '''新 이나후네 케이지'''라는 프로듀서는 이나후네 본인이 아닌 '''완전 다른 사람이다.''' 이나후네 케이지를 존경해서 저런 팬네임을 썼다고 한다. 마이티 No. 9의 발표 인터뷰에서 캡콤 입사시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졌는데, 사실은 [[코나미]]에 입사하려고 했지만 '''[[서태웅|코나미가 거리 상으로 멀고 대신 캡콤이 더 가까워서]]''' 캡콤에 들어갔다고 한다.[* 캡콤과 코나미 모두 [[간사이]]에 위치한 회사였다. 다만 지금도 캡콤은 오사카에 있지만 코나미는 [[고베]]→[[도쿄]]로 본사를 이전한 상태.][* 여담이지만 [[미야모토 시게루]]도 "닌텐도에는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으니까"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원래는 [[일러스트레이터]] 및 그래픽 디자이너였으며 캡콤에 입사 후 처음으로 디자인한 캐릭터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아돈(캡콤)|아돈]]이다. 캡콤 재직 시절에는 [[데드 라이징]] 실사 영화도 감독한 적이 있다. 사실 그래픽 디자이너 외의 직책으로 이나후네가 게임 개발에 제대로 참여한 것은 [[록맨 X 시리즈]]가 전부였고, [[게임 프로듀서]]가 된 이후에는 고속 승진을 하며 캡콤의 경영진이 되어 활동했다. 프로듀서라는 직책의 특성과 고위직이라는 것 때문에 프로듀서가 된 이후부터는 실제 게임 제작 현장과는 동떨어진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역전재판 시리즈]] 팬들에겐 [[역적]] 취급을 받는데 [[역전재판 4]]에 [[나루호도 류이치]]와 [[메이슨 시스템|배심원제에 대한 내용]]을 넣을 것을 [[타쿠미 슈]]에게 권고해서 스토리를 이래저래 꼬이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나후네의 권고를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역전재판은 캐릭터성에 의존하는 비중이 큰 게임이기에 이미 검증된 캐릭터의 출현 없이는 판매량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봐야 했고, 나루호도의 등장은 결국에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므로 이것이 반드시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때문에 타쿠미가 [[슬럼프]]에 빠지고 이래저래 시리즈의 앞날이 꼬이면서 후속작 [[역전재판 5]]의 출시를 크게 지연시켰다는 점에서[* 게다가 후속작에서 배심원제는 잘려버렸다.]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다. 이 때문인지 [[역전검사]] 제작 때부터는 거의 터치를 안 했다고 한다. 이나후네는 한때 강연 장소 등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일본 게임들과 일본 게임의 미래에 대한 비판을 하였다. 당시 캡콤의 노골적인 [[DLC]] 정책에 반감을 가진 캡콤의 안티팬들과 덤으로 신작이 나오지 못해 화가 난 록맨의 팬들에게서 '''"일본 게임계의 마지막 보루", "록맨의 아버지"''' 같은 식의 찬양을 받아왔었으며, 때마침 그가 언급한 '''"무슨 판단이냐,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이냐"''' 같은 발언 덕분에 인터넷 등지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후 캡콤에서 퇴사한 후에 발매한 소울 새크리파이스를 성공시키며 독립 개발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이티 No. 9]]의 참혹한 실패'''로 지금까지 쌓은 명성과 커리어가 한 순간에 박살나 버리고 그의 팬들도 등을 돌리게 되었다. 하단의 [[이나후네 케이지#s-3|퇴사 후 문단]]에서 후술.[* 웃긴 건 그의 인생 최악의 실수로 가만히 있던 [[캡콤]]이 [[록맨 11]]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록맨의 아버지가 캡콤을 떠난 후 [[록맨 시리즈]]에 손을 댈 일이 없었는데 그의 실수와 만행이 일어난 걸 보고 두고 볼 수 없었던 캡콤의 개발진들이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 하겠다|우리가 이거보단 더 잘 만들겠다는 심정]]으로 나서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확실히 그가 떠난 후 록맨 시리즈 신작에 대한 부담감이 캡콤 직원들 사이에서도 존재했다고 한다.] 이나후네의 몰락에는 [[마이티 No. 9]]의 실패가 결정적이었지만 이전부터 본인 작품을 큰 변화나 발전없이 우려먹거나, 발매 전 홍보용 립서비스만 줄창 하는 경우도 많았고, 게임 개발자임에도 경영쪽에 끼어들어서 관여하는 행위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마넘나 사태 이후 이러한 행위들이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앞서 설명된 역전재판 시리즈에 대한 입김도 있지만, [[미카미 신지]]가 캡콤과 결별하여, 원작자가 제작하는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더 이상 보지 못하고, 10년 넘도록 시리즈의 저질, 양산화가 이루어졌던 이유 중 하나를 이나후네라고 보는 바하 팬들도 일부 존재한다.[* 이나후네 파와 미카미 파의 경쟁이 심화되었는데 갈등을 크게 빚었다고 볼만한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외부인의 시선일 뿐이고 자세한 내막은 당연히 알 수 없다.] 당시 미카미는 캡콤 경영진과의 불화가 있음을 날선 반응으로 내비췄고 상술하였듯 이나후네는 게임 디렉터 주제에 경영에 힘쓰려 했기 때문이며 캡콤 내부에서 미카미 신지가 배척당하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도 당시 이나후네 주도 작품과의 흥행 차이였다.[* 더 웃긴것은 이나후네가 아무리 핵심 인원이고 그와 비교해 당시 미카미의 작품이 단순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졌을지라도 완성도 떨어지는 작품을 내놓은 적은 없으며, 무엇보다 캡콤이라는 회사 자체가 이미 부도로 공중분해 되었을 상황에도 미카미 덕분에 존립할 수 있었던데다 회사 최고 간판작도 미카미가 만들었기에, 미카미는 단순한 핵심 디렉터를 넘어 회사의 은인이었다.] 미카미는 퇴사 후, 이후로 캡콤에서 만드는 바이오하자드 따위에 자신이 관심 가질 일 없다고 경멸섞인 인터뷰를 할 정도였지만, 10여년 후 캡콤이 초심으로 돌아가 게임의 완성도에 신경쓰게되자 바이오하자드 8에 대하여 호평을 남겼으며, 리메이크된 바이오하자드 4도 직접 엔딩까지 플레이하고 호평을 남긴 것, 비슷한 시기에 미카미 아래의 후임이었던 카미야 히데키가 당시 이나후네의 패악질에 대하여 밝힌 내용이 등을 보면 시사되는 부분이 꽤 많다. 결과론이지만 이나후네가 캡콤을 퇴사해 마넘나 제작을 발표하면서 캡콤 내부에서 록맨 관련 프로젝트가 모두 중지되었고, 이후에 결국 지지부진한 모습만 보이다가 다시 수렁에 빠져버렸다. 또한 '''캡콤의 암흑기가 이나후네 집권기와 겹친다'''는 점에서도 의혹을 가지는 팬들이 있는 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나후네가 프로듀스를 맡기 시작하면서 똑같은 게임의 후속작 제작에만 열을 올리는 등 캡콤 게임의 질적 저하를 야기했고 이를 보다못한 다른 프로듀서들이 모여서 자제하라고까지 요구했다는 모양이며 그 와중에 프로듀서는 성공보수에서 일정 비율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챙겨갈 수 있었는데 항상 최고로 챙겨가서 별명이 'MAX군'이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